웃을 수 있어서 사람입니다, 나 태어나 살아있어 기쁨이었던 순간순간에 행복한 웃음이 있었습니다. 사랑받은 날들의 어렴풋한 기억에조차 따스한 햇살 같은 소박한 웃음과 함께 했습니다. 예고 없는 절망과 고단함이 숨겨진 일상에 듬성듬성 들쑤시는 시름이 한숨으로 자리해도 큰마음 고른 다짐이 손잡은 건 웃음이었습니다. 사랑하고 행복한 날들의 웃음도 즐거운 일들에 마냥 좋은 듯 실실거림도 감동과 행운에 한바탕 크게 웃어봄도 얼굴에 주름 꽃이 한 아름 핀 골 지어도 화사한 향기 뿜으며 또 웃어봅니다. 金仙渶 inside people 논설위원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부총장, 교수) 행복은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틀이다 행복은 끝없이 몰아치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암에 걸렸을지라도 고질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암치유율은 38%에 그치지만, 점하나 붙여서 고칠병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암의 치유율은 70%까지 올라간다는 통계도 있다. 똑같은 암이지만 죽을병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암을 통해서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는 분들도 많다 암을 죽음으로 연결하느냐, 암을 삶으로 해석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긍정적인 태도에 달려있다. 행복은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틀이다 긍정적인 생각없이 우리는 어느 한순간도 행복해 질 수 없다. 사람들은 언제나 행복을 원한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않지만 행복한 사람들이있다.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서는, 밝음을 선택하지 않고서는 결코 행복해지거나 웃을 수 없다는 것이다. "힘들다”라는 말이있다. 힘이들어 죽겠다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힘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힘이 몸안에 들어오니 당연히 몸이 잠시 피곤하고 무거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참으로 낭만적인 관용구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남녀를 안 가리고 수다로 들썩여지는 이 말은 가끔 술자리에서나 혹은 ‘자유’라는 개념을 부적절한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음을 생각하며 잠시 소음으로 정지시킨다.. 학창시절 헌책방 구석에서 집어 든 책 속의 글귀가 마음에 꽂힌 순간이 있었다. ‘자유로운 영혼에 깃든 열정은 준비된 외부세계와의 타협을 반기지 않는다’ 틀에 박히지 않으려는 예술가의 창의력과 자유를 외친 소신 있는 직언이었다.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웠던 이 말의 깊이를 누가? 얼마나? 대담한 표현과 생각이라 공감했었을까? 구속 됨이 없는 진짜 자유로움을 열망하는 내면의 울림이었다. 아마 예술이란 총체적 부분에서 제재가 많았던 시절에 용기 낸 의도적 단언 같았었다. 모두가 생각하는 자유는 존재하는가? 정말 자유는 평등할까? 라는 것에 화두를 둬본다. 가장 본능적인 자유란! 전혀 방해받지 않는 누구든 상상으로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다는 건! 처음 생각의 자유를 말로 떠들어보자면, 좀 저급스러운 dash의 표현으로 이성 간의 배석에서 요즘 신조어인 내
겨울의 정서 2 겨울비가 건넨 선물 한참 내리는 겨울비를 물끄러미......, 가끔 보이는 우산과 떨어지는 나뭇잎 바람도 외로움도 빗소리에 흔들린다. 쓸쓸함 감추려 고게 떨구던 텅 빈 마음이 그려낸 건 눈에 들어온 수채화 겨울비는 대지 위를 색색의 잎으로 덮고 그렇게 그림으로 채색된 선물이었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참으로 낭만적인 관용구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남녀를 안 가리고 수다로 들썩여지는 이 말은 가끔 술자리에서나 혹은 ‘자유’라는 개념을 부적절한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음을 생각하며 잠시 소음으로 정지시킨다.. 학창시절 헌책방 구석에서 집어 든 책 속의 글귀가 마음에 꽂힌 순간이 있었다. ‘자유로운 영혼에 깃든 열정은 준비된 외부세계와의 타협을 반기지 않는다’ 틀에 박히지 않으려는 예술가의 창의력과 자유를 외친 소신 있는 직언이었다.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웠던 이 말의 깊이를 누가? 얼마나? 대담한 표현과 생각이라 공감했었을까? 구속 됨이 없는 진짜 자유로움을 열망하는 내면의 울림이었다. 아마 예술이란 총체적 부분에서 제재가 많았던 시절에 용기 낸 의도적 단언 같았었다. 모두가 생각하는 자유는 존재하는가? 정말 자유는 평등할까? 라는 것에 화두를 둬본다. 가장 본능적인 자유란! 전혀 방해받지 않는 누구든 상상으로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다는 건! 처음 생각의 자유를 말로 떠들어보자면, 좀 저급스러운 dash의 표현으로 이성 간의 배석에서 요즘 신조어인 내
가장 쉬운 말로 政治를, 가장 어려운 福祉에 신중하고 기초적인 생각을 내놓는다. 쉽다, 어렵다의 focus는 통상 사람들이 문외한이거나 무관심 속에 관심 종의 대열에 섞여서 도대체 뭔 소린지? 꿀 먹은 벙어리로 귀 막고 외면하고 싶어질 때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하루 밥 벌이에 지친 이들이, 그나마도 못하는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논할 마음의 여유가 없이 견디고 있음을 아는가? 왜? 뼈아프게 가난으로 힘든 취약계층을 매번 정치판에 복지라는 공약으로 거론하는가 말이다. 무식하다고, 그래서 나라꼴이 이 모양이 되었다고 삼삼오오 화내고 비난하고 떠들어대는 소리의 표적은 늘 정치에 무관심인 밑바닥에서 허우적대는 계층일 거다. 선거가 있을 때에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주권을 행사해달라고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을 사각지대로의 민심 돌리기도 빼놓지 않는다. 결국은 알고 떠든다는 부류들만 대한민국 국민이고 모르는 이들은 사람 취급도 안 한다는 게 사실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국민들 스스로가 분열을 만드는 형국이다. 모르지 않으면서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더 무식한 말들을 한다. 기초라는 것! 법률로 정한 국가 기초는 국민, 영토, 주권 따위의 국가 구성 삼요소를 두
범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개발 의혹을 둘러싸고 수 천 억 대의 특혜시비로 비난이 거세지자 이 지사는 “단언하지만 1원도 받은 적 없다”며 “제가 부정을 하거나 1원이라도 이득을 봤다면 제가 후보 사퇴하고, 공직에서 다 사퇴하도록 하겠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에 대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이런 논리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도 통장에 1원도 입금받은 일이 없다”라며 “이재명 지사 통장에 1원이 입금되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 지사에 비하면 역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시 손이 크다. “청와대에서 어떤 돈도 단돈 10원도 받지 않았다” 그는 집권 5년 동안 청와대 예산 외에 한 푼도 받지 않았다. 그 부문에서는 투명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차남 김현철 씨는 한보 사태가 터지면서 뇌물수수 및 권력남용 혐의로 체포됐고, YS는 아들을 감옥에 보내면서 “자식의 잘못은 그 아비의 허물” 이라고 비통한 심정으로 국민에게 용서를 비는 사죄의 글을 낭독하기도 했다. 한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진 전두환 전 대통령, 그는 1979년 10.26 때,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수사하던 합동수사본부장으로 12.12 군사반란을 주도, 권력을 장악했다. 1980년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이 강압에 의해 하야하자 제2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 다시 소집되어 8월 27일 제11대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그때 통일주체국민회의 총 2,540명의 대의원 중에 2,525명이 출석했으며 2,524표, 무효 1표로 전두환 후보가 당선되었다. 99,4%라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5공화국이 탄생했다. 당시에는 전두환 후보가 사실상 절대권력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전두환 후보가 광주학살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통대의원 2,524명이 절대지지를 보냈을까? 잘 모르고 시류에 따라 절대지지를 보냈던 것인가? 그때 무효표 한 표의 주인공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전두환의 핏빛 과거를 알고 무효표를 던진 것일까? 그때 2,524명은 왜 전두환 후보에게 절대지지를 보냈는지 그게 궁금하다. 만약 그 11대 대선에서 찬성보다 반대가 많이 나왔다면 제5공화국이 탄생했을까? 왜 그때 통대의원들은 용감하게 반대표를 던지지 못했을까? 신군부세력에 붙잡혀 고문을 당하거나 죽을
“나는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참으로 낭만적인 관용구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남녀를 안 가리고 수다로 들썩여지는 이 말은 가끔 술자리에서나 혹은 ‘자유’라는 개념을 부적절한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음을 생각하며 잠시 소음으로 정지시킨다.. 학창시절 헌책방 구석에서 집어 든 책 속의 글귀가 마음에 꽂힌 순간이 있었다. ‘자유로운 영혼에 깃든 열정은 준비된 외부세계와의 타협을 반기지 않는다’ 틀에 박히지 않으려는 예술가의 창의력과 자유를 외친 소신 있는 직언이었다.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웠던 이 말의 깊이를 누가? 얼마나? 대담한 표현과 생각이라 공감했었을까? 구속 됨이 없는 진짜 자유로움을 열망하는 내면의 울림이었다. 아마 예술이란 총체적 부분에서 제재가 많았던 시절에 용기 낸 의도적 단언 같았었다. 모두가 생각하는 자유는 존재하는가? 정말 자유는 평등할까? 라는 것에 화두를 둬본다. 가장 본능적인 자유란! 전혀 방해받지 않는 누구든 상상으로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다는 건! 처음 생각의 자유를 말로 떠들어보자면, 좀 저급스러운 dash의 표현으로 이성 간의 배석에서 요즘 신조어인 내
24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종전선언 문안과 관련해 “미국과의 협의는 어느 정도 마무리 과정에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같은 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한·미가 종전선언 문안 협의를 마무리하는 중”이라며 “하지만 비핵화라는 단어를 문안에 어떻게 포함시킬지를 놓고 교착 상태에 빠졌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나온 언론 보도들을 보면 미국은 종전선언이 정전체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북한의 비핵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문구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관건은 과연 북한이 미국의 입장이 반영된 종전선언을 받아들일지 여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북한은 유엔사 해체 없는 종전선언, 북한 비핵화 협상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비핵화 입구’ 종전선언은 거부할 것이다. 김여정이 9월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에서 제안한 종전선언에 대해 흥미롭다고 평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비핵화 입구론’을 비핵화를 위한 사전 조치나 앞으로 추가적인 조치 없어도 가능한 종전선언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진 전두환 전 대통령, 그는 1979년 10.26 때,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수사하던 합동수사본부장으로 12.12 군사반란을 주도, 권력을 장악했다. 1980년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이 강압에 의해 하야하자 제2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 다시 소집되어 8월 27일 제11대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그때 통일주체국민회의 총 2,540명의 대의원 중에 2,525명이 출석했으며 2,524표, 무효 1표로 전두환 후보가 당선되었다. 99,4%라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5공화국이 탄생했다. 당시에는 전두환 후보가 사실상 절대권력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전두환 후보가 광주학살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통대의원 2,524명이 절대지지를 보냈을까? 잘 모르고 시류에 따라 절대지지를 보냈던 것인가? 그때 무효표 한 표의 주인공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전두환의 핏빛 과거를 알고 무효표를 던진 것일까? 그때 2,524명은 왜 전두환 후보에게 절대지지를 보냈는지 그게 궁금하다. 만약 그 11대 대선에서 찬성보다 반대가 많이 나왔다면 제5공화국이 탄생했을까? 왜 그때 통대의원들은 용감하게 반대표를 던지지 못했을까? 신군부세력에 붙잡혀 고문을 당하거나 죽을
2021년, NC 강서점은 기존 의류 전문 아울렛에서, 가전과 인테리어를 포함한 토탈 아울렛으로 컨셉을 확장하며 대대적인 리뉴얼을 진행했다. 바뀐 고객의 니즈와 도심형 아울렛이라는 이랜드리테일의 강점을 합친 변화였다. 이 변화는 패션에서 중국, 유통사업부로 12년간 9번이나 팀을 옮겼던 김형수 지점장이 정리한 인사이트로 시작되었다. Q.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NC강서점 지점장을 맡고 있는 김형수입니다. 2009년에 입사해 미쏘에서 사업과 영업을 배웠고요. 2012년부터 중국 패션 사업부에서 근무했습니다. 2017년부터는 한국 유통 사업부에서 이랜드리테일 불광점 잡화팀, 부천점 기획, 동수원점 지원실장 역할을 하고, 이후 회사의 부름으로 슈펜 기획팀으로 이동해서 반년, 다시 그룹 홍보실로 이동해서 반년 정도 일을 했습니다. 2019년에는 NC충장로점에서 처음 지점장을 맡았고요. 2020년 10월부터 강서 지점장이 되었습니다. Q. 정말 다양한 곳에서 일하셨네요! 이렇게 이동을 많이 하신분도 처음 봬요. 네. 저는 입사 초기부터 *CDP를 구체적으로 세운편이라, 지주 이동을 하는 게 어려움도 있었는데요. 지금와서 돌아보면 짧지만 여러 직무를 했던 것이
홍준표를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은 재미없다. 그다지 멋있는 정치인도 아니고 선이 굵은 정치인도 아니다. 아웃사이더이자 혼자만의 멋에 취해 사는 정객이다. 경선 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형편없이 나오자 자기 이름을 빼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던 그는 이번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서 윤석열과 끝까지 맞붙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경쟁을 해 국민경선을 흥행시킨 공은 있다. 그러나 경선 과정에서 독고다이 홍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그에게는 정치인생 26년에 걸맞는 현직 정치인 우군은 아주 없었다. 조경태와 하영제 둘 뿐이었다. 안상수와 최재형이 들어오자 금이야 옥이야 했지만 다른 후보 캠프에 합류하는 자들은 들끓는 파리떼 정도로 취급했다. 보수 후보로서 MZ세대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당심을 얻는 데는 실패했고 대권도전 두번째 꿈은 좌절됐다. 지난 11월5일 국민의힘 결선결과에 유승민, 원희룡과 함께 깨끗이 승복했다. 그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다시 아웃사이더로 돌아갔다. 이재명과 윤석열 둘 중 지는 자는 감옥가게 될 것이라며 윤석열 캠프에도 합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자신을 지지해준 MZ세대를 위한 놀이터를 만들 생각이란다. 정계은퇴 대신 백의종군 하겠다
시대의 흐름을 딱히 언급하지 않아도 개개인이 가진 공감 능력은 정답이 없을 정도로 방대함을 살면서 느꼈을 것이다. 그런 공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주도권도 또한 각자에게 있음을 안다. 이러한 공감의 집합을 소통이라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감히 딴지를 걸어보고 싶어진다. 완전한 혈연의 내 편이라는 가족 구성원도 개성이 다 다르고 그 어떤 조직체라도 공감하는 바가 당연히 같을 수는 없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라는 말을 비아냥스레 하면서도 정작 그 모습을 안 하고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우리는 상대의 감정을 살피며 어긋남이 없고 나쁘지 않은 기분에 상처는 제쳐두고라도 논리적인 상대의 주장이 충분히 세뇌가 되는 것을 공감이라 여기는 소수나 다수의 집합체가 소통된다는 착각을 한다는 것이다. 남의 감정과 말을 얼마나 살피고 수긍을 해야 소통이 되는 것일까? 사소한 일상의 일반적인 타인과의 대화에서도 공감을 일으키려면 무조건 들어주는 쪽이 있음으로 절대다수가 긍정적 소통이라 만족을 느낀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고 살았다. 사실 상대의 말에 토를 달거나 반대의 의견을 내면 결국 그 대화는 인내심 없고 상대를 몰라 들이댄다는 꼴로 다툼이나
2022년 3월9일, 누가 축배를 들까? 4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을 후보로 내세웠고 국민의 힘은 5일 후보선출을 앞두고 있다. 골수지지자들은 지지후보에게 숱한 의혹이 제기되어도 묻지마 지지를 한다. 이재명 지지자들은 대장동의혹이 드러나 이재명이 주범이라해도 끝까지 지지하고 윤석열 지지자들은 고발사주의혹의 혐의가 드러난다해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14년전 BBK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는 예비경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본선에서 정동영 후보에게 몰아쳤고 이 후보가 엄청난 궁지에 몰렸지만, 결국 500만표 이상의 표차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다. 정권교체 바람이 거셌다는 의미다. 지난 대선도 박근혜 정권에 비리와 무능에 의한 정권교체 바람이 거세 우유부단해 보였던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다. 큰 선거는 역시 바람이다. 이번 대선은 국민들이 대선후보에게 어떤 바램을 가지고 있을까? 국민들의 바램을 충족시켜줄 후보에게 민심의 대폭풍이 불 것이다. 이번 대선의 현재 가장 큰 바람은 ‘정권유지냐?’‘정권교체냐’다. 현재까지 여론의 흐름은 정권교체의 바람이 더 세다. 대게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