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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욕구가 아닌 불안을 바라본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청년정책조정위원)

봄이 무르익었지만 부동산에 몰아치는 바람은 아직도 매섭다. 무섭게 치솟는 집값, 공기업과 위정자의 투기 소식이 들려옴과 동시에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와 쪽방에서 살아가는 청년 세입자의 모습이 겹치며 집을 떠올리면 깜깜한 동굴 속에 있는 것 같으면서 슬프기까지 하다.


어느샌가 집은 사는(living) 곳이 아니라 사는(buying) 것이 됐다. 청년정책조정위원으로서 청년 주거 정책을 고민하는 나에게 주거 정책을 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피해를 보는 현실에서 이를 직시하고 따를 것인지 원칙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망설여지는 것이다.


다행히도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이 직접 답을 줬다. 나 역시 같은 청년이다 보니 주변 친구들과 집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표면으로 드러나 있는 현상 자체가 아니라 그 이면의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세입자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 만들어야


‘집을 사고 싶다’라는 생각 이전에 세입자라는 ‘불안’이 있었다. 입주가 가능한 공공임대주택은 턱없이 부족하고 운 좋게 입주하더라도 6년을 살면 떠나야 한다. 민간임대시장에서는 매일 같이 폭등하는 전월세 가격을 마주해야 하며 임대인들의 갑질로 인한 스트레스도 감당해야 한다. 집을 구매할 능력만 생긴다면 세입자로 불안하게 사느니 집을 소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욕구 이전에 불안이 있던 것이다.


하지만 불안이 모두에게 있다면 집을 구매할 수 있을 만큼 자산을 가진 청년은 그리 많지 않다.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무려 11억 원에 육박하기에 결국 청년의 80% 가까이는 전월세 집을 택해야만 한다. 이마저도 10%는 집이 아닌 비적정 주거에 살고 있다.


정책은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비전과 희망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현상 자체에 집중해 욕구를 충족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기본적인 불안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수일 때 불안과 위협을 먼저 해결할 수 있어야 했다. 따라서 자산을 모아둔 청년에게는 부동산 정책이 활로를 열어줄 것이기에 청년 주거 정책은 이행기의 청년이 일상에서 겪고 있는 불안과 위협에 주목하기로 했다.


2021년 발표된 정부의 청년정책 기본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5년간 청년이 입주 가능한 공공임대주택이 27만 가구 공급될 예정이다. 맞춤형 전월세 대출 등을 통해 43만 가구의 주거비 부담을 완화할 계획이다. 기존에는 제외됐던 만 30세 미만 청년에게도 주거급여가 지급된다. 주거 상향을 통해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에 사는 청년 비율 10%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도 수립했다. 세 들어 사는 사람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바람이 정책의 기조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10년 뒤 우리 사회 다른 ‘집’ 그리고 있기를


다만 예산상 문제로 전향적인 목표를 설정하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이 남는다. 지옥고로 대표되는 비적정 주택에 거주하는 청년을 줄이기 위한 제안은 50%에서 10%로 대폭 감축됐다. 비록 주거급여가 확대됐지만 부모가 수급자인 경우로만 한정하기 때문에 차별적 요소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았다.


정부 차원의 청년 주거 정책은 이제 첫걸음을 뗐다. 정책에 대한 비전은 제시됐으니 이제 정책의 집행을 통해 발을 맞추면 된다. ‘집이 돈벌이 수단이 아니어야 하며 세 들어 살든 소유해 살든 편안하고 안정적인 집이 필요하다’는 바람은 해결책이 어려워서 못 찾는 것이 아니다.


불안을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투기의 욕망으로 해석하지 말자. 대한민국 국민이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기본 중의 기본인 주거에 대한 권리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자. 10년이 지나 청년이 아니게 됐을 때는 부디 우리 사회가 다른 ‘집’을 그리고 있기를 기다려본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청년정책조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