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이드피플 노재현 기자 | 세계문화유산의 가치를 거리로 확장…오감으로 만나는 ‘선정릉 역사문화거리’
꿈이 모이는 도시, 미래를 그리는 강남구가 세계문화유산인 선릉과 정릉(이하 선정릉) 일대 둘레길 2.1km 구간을 역사적 숨결과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선정릉 역사문화거리’로 새롭게 단장했다.
선정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강남의 대표적인 역사문화자원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구는 선정릉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일대 거리 활성화를 위해 2024년부터 주민 중심의 ‘유네스코 선정릉 문화거리 축제’를 개최해 왔다. 축제를 찾는 방문객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정작 거리에서 선정릉의 역사성과 생태적 가치를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상설 콘텐츠는 부족하다는 현장 의견이 이어졌다. 구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고, 선정릉의 매력을 둘레길과 주변 거리까지 확장하기 위해 역사문화 특화거리 조성사업을 추진했다.
주민과 함께 기획한 ‘헤리티지 경험 디자인’
이번 사업은 2025년 5월부터 12월 말까지 추진됐으며, 기획 단계부터 주민과 방문자, 관계자 등이 함께 참여하는 민관 협력 거버넌스 리빙랩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워크숍에서는 선정릉 입구를 찾기 어렵고, 지하철역에서 내려도 안내가 부족하며, 쉬어갈 공간과 거리의 상징성이 약하다는 문제부터 선정릉의 역사성과 생태적 품격을 어떻게 담아낼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모였다. 구는 이를 바탕으로 단순한 환경 정비를 넘어, 역사문화유산의 경험을 거리로 확장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구체화했다.
사업의 전체 디자인 주제는 ‘헤리티지 경험 디자인’이다. 선정릉 안에서만 느낄 수 있던 역사·생태 자원을 둘레길 공간으로 확장해, 방문객이 길을 걷는 동안에도 시각·후각·청각 등 다양한 감각으로 선정릉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즉, 문화유산을 ‘보는 공간’에서 나아가 ‘걷고, 듣고, 향으로 기억하는 공간’으로 재해석한 셈이다.
선정릉 브랜드 개발, ‘향·음·보·물’ 콘텐츠로 확장
구는 먼저 선정릉의 정체성과 역사적 가치를 담은 선정릉 역사문화거리 브랜드를 개발했다. 브랜드 심볼은 겹겹이 포개진 세 개의 곡선 층으로 구성돼 있으며, 성종, 정현왕후, 중종의 세 능을 상징한다. 동시에 시간의 켜가 층층이 쌓인 역사적 중첩과 과거·현재·미래가 이어지는 확장성을 담고 있다. 간결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은 왕릉의 지붕선과 능선의 실루엣, 전통 기와의 선형을 연상시키며, 절제된 형태 속에 선정릉만의 품격과 현대적 감각을 함께 담아냈다. 이 디자인 언어는 상징 사인과 벤치 등 거리 시설물에도 일관되게 반영돼 통일감 있는 경관을 형성한다.
이와 함께 오감을 깨우는 체험형 연계 콘텐츠 ‘향·음·보·물’을 함께 개발했다. ‘향(香)’은 전문 조향사와 협업해 선정릉의 사계절 숲 향을 담은 디퓨저와 룸스프레이 각 2종으로 구현했다. ‘능청향’은 봄의 이슬과 여름 나뭇잎의 초록 기운을, ‘능적향’은 가을 낙엽과 겨울 흙냄새의 고요한 정취를 표현했다. ‘음(音)’은 김수진 작곡가가 참여해 선정릉 자연의 리듬을 재해석한 전용 배경음악(BGM)으로 개발됐다. 거리 내 스피커를 통해 송출하고, QR코드로도 접속해 감상할 수 있다. ‘보(步)’는 선정릉 둘레길 산책과 러닝을 위한 오디오 가이드다. 조인숙 건축가, 이대길 정원가, 류다움 큐레이터 등 분야별 전문가가 참여해 선정릉의 건축적·생태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物)’은 왕릉을 수호하는 석호·석마·석양을 모티브로 한 수공예 도자기 문진 3종과, 왕릉 내부 건축물과 브랜드 요소를 재해석한 수제 비누로 개발했다.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선정릉의 이미지를 일상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한 굿즈다.
둘레길 2.1km의 변신...찾기 쉽고 머물고 싶게 바꾼 거리 디자인
현장 의견을 반영한 공간 정비도 함께 이뤄졌다. 구는 한국 전통 기와의 열린 곡선과, 액을 막고 정화의 의미를 지닌 홍살문의 붉은색을 디자인 모티브로 삼아 총 17개 아이템을 개발·설치했다. 가로벤치와 상징 사인, 바닥 요소, 선정릉 입구 안내사인, 왕릉 펜스 안내사인 등을 체계적으로 정비해 방문객이 보다 쉽게 길을 찾고, 거리 곳곳에서 선정릉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야간 경관도 새롭게 구성했다. 선정릉 진입공간에는 길례의 의미를 지닌 금천교를 물길의 이미지로 형상화한 고보조명을 설치했고, 돌담부에는 홍살문·정자각·장명등 등 선정릉의 주요 요소를 픽토그램으로 구현한 조명을 연출했다. 낮에는 걷고 쉬는 공간, 밤에는 빛으로 역사적 상징을 만나는 공간으로 거리의 경험 폭을 넓힌 것이다.
구는 이번에 개발한 선정릉 역사문화거리 브랜드와 콘텐츠를 널리 알리기 위해 코엑스 밀레니엄광장, 강남역 미디어폴, 버스정류장 등 다양한 미디어 매체를 활용한 홍보를 이어갈 계획이다. 선정릉의 향을 담은 디퓨저와 홍보 스티커는 인근 카페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연계하고, 굿즈는 향후 축제 등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조성명 강남구청장은 “이번 사업은 강남의 소중한 역사문화유산인 선정릉의 가치를 일상 속 거리 공간으로 확장해, 보다 많은 분들이 자연스럽게 체감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선정릉 일대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